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키노토리시마 암초 (문단 편집) === 일본 최남단 번복 논란 === '일본 최남단의 비'(日本最南端之碑)가 있는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의 하테루마섬.[* 소년탐정 김전일의 에피소드인 [[괴도신사의 도전장]]에서도 언급이 되는 곳이다.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의 여주인공 [[린다 리코]]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b/Hateruma-minami.jpg/800px-Hateruma-minami.jpg|#]] 일본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자국 영토의 남쪽 끝을 하테루마섬이라고 여겼으나, 현재는 오키노토리시마를 최남단이라고 주장한다. 즉, 오키노토리시마는 이전에는 일본 내부에서도 '''섬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일본 최남단의 비'는 '''정부 차원에서 만든 비석이 아니라''' 오키나와 반환 이전 미군정 시절인 1970년에[* 오키나와 반환은 1972년이고 오가사와라 반환은 1968년의 일이므로 오키노토리 암초는 반환받고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군정인 시점이다.] 섬을 여행하던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번 자비로 만든 것이다. 즉, 나라가 세운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세운 것이니 상관 없다는 주장이 있다. 비석을 세울 시점에 하테루마 섬은 일본의 시정권도 아니었다. 또한 '일본 최북단의 비'도 실제 실효 최북단인 '벤텐 섬'이 아니라[* 현재 일본 정부는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에토로후) 섬이 자국의 최북단이라 주장한다. [[쿠릴 열도 분쟁]] 항목 참조.] 홋카이도 최북단의 소야 곶에 있다. 벤텐 섬은 지리학적, 지정학적 일본의 최북단이지만 소야 곶 근해의 작은 바위섬이라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소야 곶은 일본 시정권 하에 있는 본토 최북단이기에 기념과 관광객의 접근성을 위해 세운 것인데 반해, 오키노토리시마의 경우 1987년 공사 이전에도 만조시에 드러나긴 했지만 면적이 너무 협소하여 일반인의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비석 등을 세울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비석을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도 '일본 '''최남단'''의 비'를 하테루마에 세울 필요는 없었다. 비를 세울 당시만 해도 일본 대중 사이에 그 지역이 최남단이라는 총의가 있었고, 만약 위 주장처럼 이것이 '정부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일탈'이라면 일본 정부도 그 즉시 이를 제거하려고 했을 터이나 무려 반 세기 가까이 이를 묵인한 것이다. 당시에는 콘크리트 공사를 했을 때도 아니었으나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하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비석은 유인도 중에서 최남단인 섬에 세운 비석으로 유인도 한정의 최남단으로 해석의 여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설령 최남단의 섬이 하테루마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들, 정부 차원에서 최남단의 섬은 오키노토리시마라는 인식은 1931년 내무성 고시 제163호에 의해 오키노토리시마라고 명명된 이후 줄곧 같다. 일본 측에선 1968년 미국의 오가사와라 반환 문서를 보아도 해당 암초의 스페인어 명칭인 '파레세 벨라(Parece Vela)'가 반환 목록에 분명히 포함되었으므로 영토 분쟁은 없다고 주장한다.[[https://books.google.co.jp/books?id=braPAAAAMAAJ&pg=PA4895|#Page 4897]] 협약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영해(당시는 3해리)를 포함하여 시정권을 일본에게 반환하였다. 암초는 EEZ를 가질 수 있는 섬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술한 내용은 별론으로 하고, 이 반환 문서는 미국이 일본에 넘긴 영토의 목록에 포함되었으므로 미일 양자 사이의 문제일 뿐, 미일 양자 사이의 조약이 제3국에 국제적으로 구속된다고 볼 수 없다. [[중국]]은 1972년 미국이 일본에 류큐 열도 반환 때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관할권도 같이 넘겼다며 이를 두고 미-일 사이의 불법 거래라고 주장하고,[[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548765.html|#]] 중국 해양법 학자는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이 일본에 반환한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http://world.huanqiu.com/roll/2010-02/716998.html|#]] 그러나 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 반환에서 구체적으로 센카쿠 제도를 명시하여 시정권 양도를 한 것은 아니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오키노토리시마는 영해를 포함한 권리 양도가 명확하게 언급되어 중국 측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